폐배터리 시장은 전기차·배터리 공급망(밸류체인)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미개척 시장’으로 꼽힌다. 전기차 배터리는 8~10년가량 이용해야 폐배터리가 되는데, 전기차 시대가 이제 막 열린 만큼 폐배터리 수거량이 많지 않아서다. 아직 ‘절대 강자’가 없어 글로벌 업체들이 잇따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업체는 가격이 급등한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확보,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4kWh급 배터리팩을 재활용하면 개당 약 900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올 들어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주요 원자재인 리튬 가격은 97%, 코발트는 63%, 니켈은 19% 급상승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배터리 사업 분할을 통한 자회사(가칭 SK배터리) 설립을 공식화하면서 폐배터리 재활용(BMR) 사업을 본격적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2022년 초 BMR 시험 공장을 완공하고 2025년 상업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해외에도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배터리를 재활용 업체에 매각해 추출한 니켈, 코발트 등으로 양극재를 제조해 생산부터 폐기까지 공급망 전반에 ‘배터리 순환경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통해 북미 배터리 재활용업체 ‘리(Li)사이클’과 재활용 협약도 맺었다. 삼성SDI는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피엠그로우에 지분을 투자해 시장에 진출했다. 기아는 SK이노베이션과 배터리 순환경제 협약을 맺었다.
각국 정부도 관련 규제를 풀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미국은 지난달 발표한 전기차 전환 정책에 배터리 재활용 산업 촉진 전략을 포함시켰다. 국립연구소에서 국가 차원으로 재활용 연구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전기차 제조업체가 배터리를 회수해 관리하는 재활용 체계 정책을 갖고 있다. 한국은 올해부터 폐배터리를 지방자치단체에 반납하는 의무 조항을 폐지했다. 이달부터 배터리를 수거하는 거점센터도 시범 운영된다.
업계에선 폐배터리에서 원자재 추출까지 최소 서너 시간이 걸리고, 낮은 원자재 회수율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과제로 들었다. 업계에선 배터리 잔존가치 평가 및 회수에 걸리는 시간을 개당 20분 이내로 줄여야 수익성이 보장된다고 보고 있다.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재사용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닛산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수거해 개조한 뒤 편의점의 재생에너지 저장용 ESS로 납품하고 있다. 가정과 건물에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비상용 배터리로 용도를 바꾸는 연구도 마쳤다. 우치다 마코토 닛산 최고경영자(CEO)는 “테슬라보다 전기차 전환은 늦었지만 배터리 재사용 분야에서는 앞서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지난 5월 도쿄전력과 하이브리드카·전기차에 이용된 폐배터리를 ESS로 활용하는 협력을 맺었다. 내년 3월까지 배터리 재사용 기술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도 OCI와 배터리를 재사용해 ESS를 만들어 태양광 발전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김형규/김일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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